아도르노는 부정의 변증법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고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란 부정의 부정의 끝없는 과정으로 본 것이다. 계몽주의 이후 인간은 자연의 예속으로부터 해방되었으나, 이러한 자연의 예속으로부터의 해방과 진보는 필히 퇴행을 포함한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해방되었으나 정치체제의 통제장치 속에 예속됨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해방은 오로지 총체적 현실 부정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해방이론이다.

아도르노 철학의 목적은 비개념적인 것 또는 개별자를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는 부정의 변증법이라는 저서를 통해 헤겔의 주관 우위의 관념론적 변증법을 비판하고, 객관 우위의 유물론적 변증법으로써 부정의 변증법을 주장했다. 헤겔의 변증법에 대해 부정의 부정을 통해 긍정을 산출하는 긍정적 변증법이라고 비판하면서, 이에 반해 부정의 부정이 긍정으로 넘어가지 않는 것, 즉 사회에서 부정적인 것이 지속되는 한 부정의 부정은 부정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부정의 변증법을 주장한다. 이에 따라 부정의 부정은 여전히 부정이며, 이성은 새로운 부정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세계의 각성은 너무 지나쳐서 이성 그 자체가 본래적인 내용을 상실하고 말았다. 결국 이성은 적응에 필요한 도구의 역할을 담당한다. 즉, 이성은 도구화되고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버렸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관점에 따라 환경을 정복하는 일에 자신의 합리성을 이용해 왔고, 이성을 단지 지배의 도구로만 삼았다. 합리주의적인 인간은 자신의 관점에 따라 자연을 정복하였고, 이성을 지배 행사의 도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자연을 그대로 두지 못하고 파괴하였다. 즉 한때 인간해방을 위한 이성은 합리화의 과정 가운데 이제 현실적 부당한 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적 이성”이 되어 버린 것이다.

현대의 문제는 단순히 소수의 (이상한) 인간/개인 때문에 생긴 문제가 아니다. 현대 서구 문명의 사상적 기초가 된 계몽주의 자체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 필요한 것이다. 계몽주의는 기존의 신화에서 신의 존재만 빠졌을 뿐, 인간이 모든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는 관점은 그대로 물려받았으며, 인격신의 대리인 대신 최고 주체가 되었다는 것 외엔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화는 그 자체로 계몽이며, 계몽은 신화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계몽의 정점에서 '모든 것을 완벽히 할 수 있는 엘리트를 중심으로 인간들이 모여 모든 것을 제어하며 정복하여 완전한 사회를 이룩하자.'는 파시즘적인 주장이 대두하게 되었으며 이는 야만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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